— 문화 충돌이 부른 예기치 못한 해프닝
1. 평범한 시작, 분위기 좋은 맥주 한잔
주말 저녁, 틴더에서 매칭된 한 여성과 처음 만났다.
메시지로만 이야기하던 그녀는 실제로 보니 훨씬 밝고 활달한 인상이었다.
브라질 현지 분위기 좋은 바에서 맥주를 시켜놓고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조명이 살짝 어둡고 음악이 은은하게 깔리는 그 공간은, 처음 만남치고는 꽤 괜찮은 분위기였다.
잔에 부딪히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냄새조차 이국적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도 묘하게 통하는 순간이 있었고, 나름 기분 좋은 대화가 이어졌다.
취미나 일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그 시간, 그녀는 유쾌하고 솔직한 타입이었다.
내가 말할 때마다 리액션이 크고, 유머에 진심으로 웃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딘가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좋던 찰나,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왔다.
“혹시 너,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처음엔 농담처럼 던진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는 그냥 솔직히 “잘 모르겠다.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는 걸 느꼈다.
눈동자가 반짝이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했고, 마치 오래 기다려온 주제를 만난 사람처럼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뭔가 단단히 스위치가 켜진 듯했다.
2. 갑작스러운 열변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진지해지더니,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게 바로 문제야! 남자들이 다 그렇게 무관심하니까 세상이 안 바뀌는 거야!”
그 말에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삶 전반을 관통하는 신념이 실려 있었다.
그녀는 손동작을 크게 써가며 사회 구조의 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목소리의 톤은 점점 올라갔고, 말의 속도는 거의 강연 수준이었다.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사람들 시선이 한꺼번에 우리 쪽으로 쏠렸고, 나는 당황해서 손에 들고 있던 잔만 만지작거렸다.
잔 위로 맥주 거품이 천천히 흘러내리는데, 그 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여성의 권리’, ‘성평등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 주제 자체는 의미 있었고 나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 자리와 타이밍이 너무 강렬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으려 했지만, 말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감정이 격해졌다.
그녀의 눈빛에는 ‘내가 지금이라도 바꿔야 한다’는 의지가 보였다.
사실 그 말 자체는 맞는 말이었지만, 문제는 장소와 분위기였다.
술집 한가운데서 토론이 시작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이미 나는 이 대화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신념의 영역에 들어갔다는 걸 직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오해로 들릴 것 같아서, 입을 여는 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그저 조용히, 가능한 한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했다.

3. 시선이 쏠리던 순간
그 바에는 동양인이 나 혼자였다.
그래서 더 시선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몰릴 때 특유의 정적이 생긴다.
그 정적 속에서 내 손끝의 떨림까지 느껴졌다.
주변 사람들은 상황을 잘 모르니까, 단순히 커플이 싸우는 걸로 보였을 거다.
몇몇 남자들이 내 쪽을 힐끔거리며 다가오는 걸 보고 식은땀이 났다.
혹시라도 오해라도 생기면 낯선 나라에서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오해라도 사면 낭패니까,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우리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말하며 계산을 했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면서도 손이 약간 떨렸다.
계산대까지 걸어가는 몇 걸음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왔을 때, 바 안의 시끌벅적한 음악이 뒤로 멀어지는데 그 소리마저 이상하게 해방감처럼 느껴졌다.
시원한 밤공기가 얼굴에 닿자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마침 택시가 지나가길래 그대로 타고 도망치듯 떠났다.
택시 창밖으로는 불빛이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제야 긴장이 풀려 한숨을 내쉬었다.
운전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표정을 보고 대충 눈치챈 듯했다.
나는 그냥 웃으며 “힘든 하루였어요”라고 짧게 말했다.
4. 예고 없는 메시지 폭풍
집에 도착하자마자 왓츠앱이 울리기 시작했다.
“너 정말 실망이야.”
“여자 이야기가 나왔다고 피하는 건 비겁한 행동이야.”
“그냥 무책임해 보여.” 이건 그냥 순화해서 말하는거지 그냥 상상도 못한 육두문자가 왔음…
문자 하나하나가 날아올 때마다 진동이 울리고, 그 소리가 묘하게 불편하게 느껴졌다.
메시지가 몇십 통은 왔던 것 같다.
잠깐만 답을 안 해도 다시 연달아 도착했다.
화가 나거나 억울하기보다, 그저 피곤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짧은 만남이 이렇게 후폭풍이 클 줄은 몰랐다.
그녀가 말하려던 진심이 뭔지는 대충 알겠지만, 그 방식이 너무 강렬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폰을 뒤집어놓고 그냥 침대에 눕고 말았다.
맥주 향이 아직도 옷에 남아 있었고, 머릿속에서는 그날의 장면이 계속 재생됐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아니면 단순히 타이밍이 나빴던 걸까.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결국 새벽이 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5. 문화의 차이, 그리고 깨달음
돌이켜보면 단순히 ‘성향이 다르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브라질은 개인의 의견 표현이 자유롭고,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문화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서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주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반면 나는 그만큼 직접적인 대화를 잘 안 하는 편이었다.
특히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가볍게 웃고 분위기를 맞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대화의 온도’를 낮추려 했지만, 그녀는 ‘열기를 높여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결국 우리는 같은 주제를 두고도 완전히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녀는 ‘설명하려는 대화’를 원했고, 나는 ‘편하게 이어가고 싶은 대화’를 원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배웠다.
첫 만남에서는 정치나 사회 이슈보다, 서로의 분위기와 리듬을 맞추는 게 먼저라는 걸.
그리고 때로는 침묵이 상대방을 더 존중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걸.
브라질이라는 나라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건, 단순히 연애가 아니라 문화 자체와 마주하는 일이라는 것도 새삼 느꼈다.
그녀의 열정은 분명 진심이었고, 나 또한 그날의 혼란스러움 덕분에 ‘다름’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 요약
- 주제: 브라질 틴더에서 생긴 문화적 오해
- 교훈: 생각의 차이는 존중하되, 대화의 ‘타이밍’도 중요하다.
- 결론: 의견 충돌이 나쁘진 않지만, 공감 없는 대화는 누구에게나 피로할 뿐이다.
그냥 틴더건 뭐건 사람 잘 가려가면서 만나야한다, 브라질이건 어디인가에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