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뭐 챙겨가면 돼요?”라는 질문은 항상 여기서 시작된다
가끔 한국에서 출장을 오거나, 잠깐 들르는 방문객이 오면 거의 예외 없이 같은 질문을 받는다.
옷을 뭘 챙겨야 하냐는 거다. 사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그냥 편하게 입고, 바지 두 개 정도에 반팔 몇 장, 반바지 두 개, 그리고 얇은 잠바 하나. 이게 끝이다.
말로 하면 참 간단하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사람들 표정은 늘 비슷하다. 대충 말하는 거 아니냐는 눈빛,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한마디.
“브라질인데 잠바가 필요해요?” 이 질문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상파울로 날씨에 대한 설명을 길게 해야 한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브라질이라는 단어가 먼저 오해를 만든다
상파울로는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브라질 이미지랑 다르다.
리우처럼 늘 덥고, 햇볕 쨍쨍하고, 반바지에 슬리퍼 신고 다니는 도시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린다.
이 도시는 생각보다 높고, 바람이 많고, 공기가 쉽게 식는다. 특히 6·7·8월은 은근히 춥다.
한국 기준으로 치면 딱 초가을 정도인데, 문제는 이게 하루 종일 유지되는 날씨가 아니라는 거다.
아침에는 긴팔이 맞고, 낮에는 반팔이 낫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다시 쌀쌀해진다. 바람까지 불면 체감온도는 숫자보다 훨씬 낮아진다.
그래서 얇은 잠바 하나가 없으면 괜히 몸에 힘이 들어가고, 하루가 피곤해진다.
더운 나라에 왜 외투가 필요하냐는 질문은,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끝까지 이해를 못 한다.
한여름에도 방심하면 안 된다
이게 겨울 얘기만도 아니다. 지금 12월, 분명 한여름이다. 브라질 여름은 원래 30도 가까이가 기본값이다. 실제로 그런 날도 많다. 하지만 상파울로는 여기서도 예외를 만든다.
새벽 온도가 17도까지 떨어지는 날이 흔하다. 낮에는 햇빛이 강해서 땀이 나는데,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는 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심지어 어떤 날은 오후 내내 19~21도를 유지한다.
여름이라는 단어 하나만 믿고 옷을 단순하게 챙겼다가는, 하루 중 몇 시간은 괜히 추위를 참게 된다.

상파울로의 비는 패턴이 일정하지 않다
상파울로의 비는 대부분 갑자기 시작된다. 오전까지 멀쩡하다가 오후에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한 번 세게 불더니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다만 항상 짧게 끝나는 건 아니다.
가끔은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도시 전체가 축 처진다.
길은 잘 마르지 않고, 이동도 괜히 귀찮아진다.
요즘 패턴을 보면, 비가 내릴 때는 보통 40분에서 1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애매한 시간이다. 우산 없이 나갔다면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고, 비를 맞고 움직이기엔 애매하게 많이 내린다.
비가 그친 뒤가 더 문제다
비가 끝나면 바로 해가 나오는 날도 많다. 그래서 처음 겪는 사람들은 “비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비가 지나가고 나면 공기가 확 식는다. 아까까지 덥던 체감온도가 갑자기 내려가고, 바람까지 불면 얇은 옷으로는 바로 쌀쌀해진다.
이때 얇은 잠바 하나가 있느냐 없느냐가 체감 컨디션을 갈라놓는다. 그래서 상파울로 사람들 가방에는 늘 접이식 우산이나 가벼운 외투가 들어 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습관에 가깝다.
27년을 살아도 날씨는 여전히 변수다
나는 여기서 27년을 살았다. 그래도 아직 날씨는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덥다길래 반팔로 나갔다가 비 맞고 바람 맞고 돌아온 날도 많고, 흐리다길래 긴 옷 입고 나왔다가 낮에 땀 범벅이 된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이제는 날씨 예보를 거의 믿지 않는다.
누가 옷을 뭘 챙겨야 하냐고 물으면, 정확한 리스트보다는 “겹쳐 입을 수 있게 챙겨라”라고 말하게 된다. 상파울로에서는 계획보다 적응이 빠른 사람이 훨씬 편하다.
결론
상파울로 날씨는 통제 대상이 아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환경이다. 비 오면 잠깐 멈추고, 추우면 잠바 하나 걸치고, 덥다면 아이스 커피 하나 들고 넘긴다.
이 도시의 날씨는 믿는 순간 뒤통수를 치지만, 그걸 전제로 살면 의외로 크게 불편하지도 않다. 오히려 이 변덕에 익숙해지면, 다른 나라 날씨가 너무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상파울로에 오래 산 사람들은 날씨 때문에 하루를 망쳤다고 잘 말하지 않는다. 예상 못 한 비나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도 그냥 이 도시의 일부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곳에서 편하게 사는 방법은 날씨를 맞추려 애쓰는 게 아니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루를 설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