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모르는 ‘한국계 브라질인’이 늘어난다는 현실

– 한국말 못하는 세대가 늘어나고 있는 씁쓸한 현실

1. 어느 순간부터 ‘한국말 모르는 아이들’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브라질에서 오래 살다 보면,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느끼던 한국어 사용 분위기가 어느 날부터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교회나 한인 모임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섞어 쓰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어 못해요”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마치 조용한 변화가 이미 다 지나가 버렸고, 우리는 뒤늦게 그 결과만 마주한 기분이다.


특히 내 집안에서도 이 흐름이 분명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내 동생의 와이프, 그러니까 제수씨는 한국말을 거의 못 한다. 기본적인 표현 몇 개는 알지만, 누가 사투리라도 섞어서 말하면 그냥 눈만 동그랗게 뜨고 듣는 완전한 ‘벙어리 모드’가 된다.

이런 장면을 한두 번 보면서 “아… 이제 브라질 교민 사회도 언어 단절의 시대로 들어가는구나”라는 현실감을 크게 느꼈다.


이런 작은 순간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한국어를 모르는 한국계 아이들’이 더 자연스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2. 언어가 사라지면, 생각·감정·문화까지 같이 희미해진다

한국어를 못 한다는 건 단순히 언어 하나를 잃는 문제가 아니다.


언어는 사고방식을 결정하고, 문장은 감정을 전달하며, 말투는 문화 자체를 담아낸다.

부모 세대의 감정 표현 방식이나 어른에 대한 예의 같은 미묘한 정서는 결국 말로 전해지는 것들인데, 이게 사라지면 ‘같은 가족인데도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느낌’이 강해진다.


포르투갈어를 기본 언어로 쓰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브라질적인 사고를 갖게 되고, 부모 세대는 그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보니 대화의 결이 서서히 멀어진다.


그래서 언어 단절은 단순한 소통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연결을 약하게 만드는 문화적 균열로 번진다.


이런 점 때문에 교민 사회에서 한국어가 사라지는 속도가, 단순한 언어 변화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3. 미국·일본이 겪은 흐름이 브라질에서도 ‘예고 없이’ 시작됐다

미국이나 일본의 교포 사회가 이미 겪어온 ‘3세 단절 현상’은 결국 언어 기반이 무너지면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한국어 사용이 줄어들면 문화적 정체성도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지고, 결국 현지화된 새로운 세대가 중심이 된다.


브라질도 지금 정확히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교민 사회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점 때문에 한국 문화가 더 오래 유지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오히려 작은 규모일수록 현지 언어와 교육 환경의 영향이 더 빠르게 스며든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 10~20년 후에는 ‘한국인 커뮤니티’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히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외형만 한국인일 뿐, 정서·언어·문화는 브라질 사람들과 거의 동일한 세대가 주류가 될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우리가 살던 시대의 교민 사회는 아주 조용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셈이다.

브라질 교민 사회에서 세대별 언어 단절을 표현한 일러스트

4. 그래서 이 얘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씁쓸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어떤 흐름을 막아보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실제로 브라질에서 살아오면서 느꼈던 씁쓸한 현실을 담담하게 기록하고 싶었다.
세대 간 이어지던 감정의 뉘앙스가 언어와 함께 사라지는 걸 눈앞에서 보게 되니

“아… 우리도 결국 이렇게 흩어지는구나”라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언어는 한 번 끊기면 다시 회복하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정서나 가치관은 회복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이 변화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시대 변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이런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 묵직한 허무함이 올라온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그래도 마냥 가볍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가고 싶은 건 분명히 존재한다

언어는 사라지기 쉽지만, 완전히 끊어져 버리기 전까지는 다시 연결할 여지가 있다.


교회, 한글학교, 커뮤니티 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이나 문화 모임을 꾸준히 유지하는 이유도 결국 ‘단절된 연결’을 어떻게든 붙잡아보려는 노력이다.

이런 모임은 단순한 언어 교육이 아니라, 세대 간 감정과 기억을 전승하는 작은 통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부모 세대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결이나 감정 표현 방식 일부가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다. 작은 말투 하나가 관계를 바꾸고, 익숙한 단어 하나가 가족의 정서를 이어준다.


다음 세대가 완전히 한국어를 잃기 전에, 남아 있는 감정선과 기억을 조금이라도 넘어가도록 돕는 것.


이게 지금 교민 사회가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솔루션’이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노력들이 모이면, 비록 언어 전체를 지킬 수는 없더라도 정체성의 핵심만큼은 남길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완전히 포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절대 이러한 현상이 잘못되었다는것이 아니라 제 2 의 언어가 바로 부모가 줄수 있는데 그런 큰 혜택과 장점을 이용하고 있지 않는것이 씁쓸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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