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범블에서 만난 그녀, 식당 문을 열자마자…

범블에 대한 기대

브라질에서 연애 어플을 쓰다 보면 틴더는 워낙 말이 많고, 그나마 “조금 더 괜찮은편이다”는 평가를 받는 게 범블이다.

실제로도 범블은 틴더보다 학력이나 직업이 괜찮은 사람들이 좀 더 보이고, 중산층 이상 느낌의 유저들이 많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아, 진짜 괜찮은 사람을 온라인으로 한 번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됐다.

사실 범블이라는 어플 자체는 구조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는 시스템도 그렇고, 프로필 구성도 틴더보다 조금 더 “사람 이야기”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더욱 이 만남에 기대를 했던 것 같다.

단순히 외모 때문이 아니라, 어느 정도 현실적인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이 경험 이후로는, 어플의 성격이 어떻든 결국 중요한 건 화면 너머 사람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하게 됐다.


기대하게 만든 프로필

그러다 매칭된 한 여성.

금발에 얼굴이 진짜 예뻤다. 나이는 30대 초반, 키도 168쯤 된다고 했고, 나는 178이니까 키 차이도 괜찮았다. 직업은 변호사.

사는 동네도 상파울루 기준으로 나쁘지 않은 동네. 거기다 한국 음식에 관심이 있다길래, 내가 자주 가는 한국 식당에서 약속을 잡았다. 솔직히 이쯤 되면 기대 안 하는 게 이상하지.

돌이켜보면 그날의 실망감은 상대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한 내 쪽 문제도 분명히 있었다.

직업, 나이, 대화, 관심사까지 전부 무난하게 맞아떨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번엔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기대라는 게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날 아주 현실적으로 배웠다.


사진만 보고 나갔던 이유

물론 나는 외모지상주의자는 아니다.

왜냐 내 얼굴도 솔직히 잘생긴 편은 아니고 (그냥 박살났다) ,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연예인 고르듯 할 입장도 아니다.

그냥 “사진이랑 너무 다르지만 않으면 되지” 정도의 마음이었다.


식당 문을 열던 순간

문제는 식당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문 열고 들어오는 걸 보는 순간, 진짜로 머릿속에 딱 하나의 생각만 들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얼굴은 정말 사진이랑 똑같았다. 진짜 예쁜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얼굴은 정교하게 살을 깎은 포토샵의 산물이었고, 얼굴 아래부터는 사진에서 상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단순한 체형 차이 수준이 아니라, 사진에서 예상했던 모습과 체형 차이가 꽤 컸다. 걸음걸이는 느렸고, 의자에 앉는 동작에서도 체형의 차이가 느껴졌다.


불편함이 쌓이던 식사 시간

식사 내내 느꼈던 불편함은 단순히 상황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내 감정을 무시하면서까지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 애매한 상태가 사람을 더 피곤하게 만든다.

그래서 말수가 줄었고, 시간만 계속 확인하게 됐다. 그날 식사가 유난히 길게 느껴진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부터 식사 내내 신경이 쓰였다.


내가 뭐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주변 시선이 의식되고, 대화에 집중도 안 되고, 음식 맛도 하나도 안 느껴졌다. 머릿속에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빨리 끝내지?”라는 생각만 계속 돌았다.

브라질 Bumble 중간 일러스트

서둘러 끝낸 만남

그래서 정말 밥만 먹었다.

술도 안 마셨고, 후식도 없었고, 대화도 적당히 맞장구만 치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일어났다. 헤어질 때는 거의 도망치듯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 온 메시지

그날 저녁, 각자 집에 도착했을 때 메시지가 왔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 넌 나 어땠니?”

솔직히 이 문장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사진이랑 너무 달라서 당황했다.”
“기대했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이런 말을 차마 할 수는 없었다. 사람으로서.

데이트 이후의 메시지가 더 어려웠던 이유는, 상대가 특별히 무례하거나 이상한 말을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의 바르고, 감정 표현도 솔직했다.

그래서 더더욱 거절의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온라인 데이팅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은, 상대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매하게 끝나버린 대화

결국 무난하게 답했다.
“나도 재밌었어.”

그러자 바로 이어서 또 메시지가 왔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

여기서 완전히 막혔다.
거절을 하자니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계속 만날 수도 없고. 결국 그 대화를 흐지부지 끝냈고, 그 이후로 데이팅 어플 자체를 거의 안 쓰게 됐다.


시간이 지나서야 든 생각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이 일이 왜 이렇게 오래 남았는지 곱씹게 됐다. 단순히 “사진이랑 달라서 실망했다”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날 내가 불편했던 건 외모 그 자체보다도, 처음부터 솔직하지 않았다는 느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온라인 데이팅이라는 게 원래 어느 정도의 포장은 기본 옵션이긴 하지만, 이건 포장의 수준을 넘어서 완전히 다른 상품을 진열해 놓은 느낌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사진은 예전에 찍은 거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는 말 한마디만 있었어도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안 만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갔을 수도 있다.

적어도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렇게 갑작스럽게 도망치고 싶은 감정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날 이후 달라진 기준

그날 이후로 범블이든 틴더든 프로필을 볼 때, 사진보다 소개글을 더 보게 됐다. 문장이 너무 과하게 꾸며져 있으면 오히려 의심부터 하게 되고, 직업이나 라이프스타일을 과시하듯 적어놓은 프로필도 자연스럽게 넘기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대치를 내려놓으니 마음은 오히려 편해졌다.

이 경험 이후로 사람을 만나는 기준이 더 까다로워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변했다. 기대치를 낮추고, 확인할 수 있는 건 미리 확인하고, 불필요한 상상을 하지 않게 됐다.

그렇게 하니까 실패라고 느껴지는 경험도 예전만큼 크게 남지 않았다. 이 썰도 결국은 그런 과정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이 썰을 쓰는 이유

이 썰을 쓰는 이유는 누굴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나만 이런 경험을 한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 그리고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비슷한 상황을 한 번이라도 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만남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기대, 상상, 준비, 실망까지 전부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결국 남은 교훈 하나

그래서 결론은 아주 단순하다.
브라질이든 한국이든, 데이팅 어플로 만날 거면 영통 한 번은 꼭 해라.


이건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아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어플이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사진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고, 기대를 너무 크게 갖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훨씬 낫다. 이건 실패한 데이트였고, 나한테는 꽤 오래 남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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